제2차 세계대전의 '어벤져스': 나치 전범을 독살한 유대인 암살단
제2차 세계대전의 '어벤져스': 나치 전범을 독살한 유대인 암살단의 실화
영화 속 가공의 영웅들이 아닌, 역사 속 실제 복수자들 '나크암(Nakam)'의 이야기. 홀로코스트 생존자들로 구성된 이 단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2,283명의 나치 전범 포로를 독살하려 했습니다. 이들은 마블 코믹스의 어벤져스와는 비교할 수 없는 현실의 비극과 복수심으로 무장했습니다.
들어가며: 영화와 현실의 간극
최근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어벤져스' 시리즈가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면서, 제2차 세계대전을 소재로 한 다양한 미디어 콘텐츠가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 속 영웅담과는 달리, 실제 역사 속에는 훨씬 더 비극적이면서도 복잡한 이야기가 존재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극적이고 충격적인 사건 중 하나가 바로 유대인 복수단 '나크암(Nakam)'의 이야기입니다.
나크암(Nakam): 복수를 향한 집단적 결의
나크암(נקם)은 히브리어로 "복수"를 의미합니다. 이 단체는 1945년 말부터 1946년 초까지 활동한 유대인 저항운동가 집단으로,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이들로 구성되었습니다. 이들의 지도자는 아바 코브너(Abba Kovner)로, 리투아니아 빌나 게토 저항운동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형성 배경과 사상적 기반
나크암 단원들은 유대인 박해와 학살에 가담한 나치 전범들이 전후 처벌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에서 이 극단적인 작전을 계획했습니다. 그들은 "6백만 명의 유대인을 죽인 만큼, 6백만 명의 독일인을 죽이자"는 슬로건을 내걸었습니다. 이는 유대인 1명당 독일인 1명을 죽이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독일 민족 전체에게 집단적 처벌을 가하겠다는 상징적인 의미였습니다.
작전 계획: 두 가지 복수 시나리오
나크암은 두 가지 주요 작전을 계획했습니다:
1. 뉘른베르크 수용소 독살 계획
첫 번째 작전은 뉘른베르크의 미국군 관리 포로 수용소에 수감된 SS 대원들에게 비소를 투여하는 것이었습니다. 나크암 단원들은 미군 위장복을 입고 수용소의 빵 공급업자로 변장했습니다. 그들은 독이 든 빵 3,000개를 수용소에 공급했으나, 독일인 포로들의 의심을 사게 되었고 결국 작전은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2. 함부르크 상수도 독살 계획
두 번째이자 더 야심찬 계획은 함부르크, 뉘른베르크, 뮌헨, 베를린 등 주요 도시의 상수도 시스템에 독극물을 투입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계획은 수백만 명의 독일인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무차별 복수 작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계획은 기술적 어려움과 실용성 문제로 실행에 옮기지 못했습니다.
나크암의 계획은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깊은 상처와 분노를 보여주지만, 동시에 윤리적, 도덕적 논란을 불러일으킵니다. 무고한 민간인까지 대상으로 삼은 이 계획은 많은 유대인 사회 내부에서도 논쟁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작전 실행과 결과
1946년 4월, 나크암 단원들은 뉘른베르크의 슈탈라크 13 포로 수용소에서 부분적인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들은 수용소의 빵에 비소를 투여해 2,283명의 독일군 포로를 중독시켰습니다. 그러나 사망자 수는 공식 기록에 따라 200명에서 400명 사이로 추정되며, 그들이 목표로 했던 대규모 사망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이 사건 이후 영국군 당국은 나크암 단원들을 체포했으나, 그들은 짧은 형기를 선고받은 후 팔레스타인으로 송환되었습니다. 이들의 행동은 전후 혼란 속에서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은 채 역사 속에 묻혀있었습니다.
역사적 평가와 윤리적 논란
역사학자들은 나크암의 행동을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평가합니다:
정의의 실현 vs. 무차별 복수
한쪽에서는 나크암의 행동을 나치의 만행에 대한 정당한 응징으로 보는 시각이 있습니다. 다른 한쪽에서는 무고한 민간인까지 대상으로 삼은 것이 윤리적으로 옳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이는 "과연 악에 대한 응징이 또 다른 악을 정당화하는가"라는 철학적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홀로코스트 트라우마의 표현
많은 학자들은 나크암의 행동을 단순한 복수보다는 극심한 트라우마의 표현으로 해석합니다. 그들이 겪은 고통과 상실은 평범한 인간의 정서를 넘어선 행동을 낳을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현대적 관점에서의 재조명
최근 몇 년간 나크암의 이야기는 학계와 대중매체에서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이는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다양한 경험에 대한 관심 증가
- 전후 정의와 복수의 개념에 대한 철학적 논의 확대
- 희생자 담론을 넘어 적극적인 저항과 응징의 역사적 사례에 대한 관심
2019년에는 이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반드시 복수하라(Revenge: Our Dad the Nazi Killer)'가 제작되기도 했습니다.
결론: 역사의 복잡성과 인간적 딜레마
나크암의 이야기는 제2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가 남긴 상처가 얼마나 깊었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입니다. 이들의 행동은 단순한 선악의 이분법으로 평가하기 어려운 복잡한 역사적 사건입니다.
이 역사는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극악한 범죄에 대한 정의란 무엇인가? 피해자의 고통과 분노는 어떤 방식으로 표출되고 해결되어야 하는가? 나크암의 이야기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쉽지 않은 답을 요구하며, 역사의 어두운 구석에서 일어난 사건들이라도 직시하고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remind us합니다.
영화 속 어벤져스와는 달리, 실제 역사의 복수자들은 초월적인 능력을 가진 영웅이 아니라, 극한의 고통을 겪은 평범한 인간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선택과 행동은 비극적인 역사가 낳은 비극적인 결과물이었으며, 우리는 이런 역사적 사건들을 통해 평화와 화해의 소중함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